예수 그리스도라는 개새끼의 실체.

모든걸 차치하고, 그는 왜? 이런 상황을 연출했을까? 그는 왜? 이래야만 했을까? 그는 왜? 그 날밤, 그 두 사람의 장례식장을 보여줬을까? 그는 왜? 이 기나긴 시간 동안의 모든 일을 보여주지 않았을까? 이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면 왜? 구태여? 이래야많 하는 걸까? 예수란 자는 굳이 왜? 당장 내일 일어날 일인것 마냥 이처럼 장난질을 쳤을까? 이 블로그에 엄마가 쓰러진 날부터 얼마나 쉼없이 다급하게 많은 일들이 스쳐 지나갔는지 젹혀있다. 그리고 이제야 냉정을 되찾고 아… 예수란 자는 이런 자이구나. 그는 그저 창조자란 명분으로 인간을 노리개로 여기는 자로구나… 느꼈다. 이 글은 예수 그리스도란 개같은 자의 이름을 마지막으로 증거하려고 쓰는 것이다. 화풀이다. 그저 이런 개같은 자를 구주로 섬겨왔던 내 자신을 향한 화풀이 이기도 하다.

모친이 쓰러진 그날, 꿈을 꾸었었다. 두 사람의 장례식이 동시에 치러지는 꿈이었다. 그날부터 쉴 새 없이 예전에 몸담았단 교회에서의 일들, 사건들, 두 사람에게 불어닥칠 일들, 뜻밖의 인물들의 죽음, 환상으로 꿈으로 쉴새없이 스쳐지나갔다. 눈만 감으면 그랬다. 버스를 타고 병원엘 갈때도 잠을 잘 수 없었을 정도였다. 그는 쉴새없이 많은 사건 사고들을, 나의 미래를 보여주었다. 두 사람의 장례식이 마치 내일 일것만 같았다. 그땐, 살인사건의 현장이나 이 집에 이사를 온 후에 일어날 일들은 없었다. 예수란 자는 왜 이래야만 했을까? 

“그 이유야 어찌되었건, 오만정이 떨어진다. 내가 더욱 예수란 개같은 자에게 구역질이 일어나는건, 그래봐야 네가 어쩌겠어? 라는 예수란 자의 조롱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의 장난질은 계속 될거라는 저 뻔뻔함 때문이다.”

나도 아는 바다. 나도 모태신앙인인데 그 개독교인들의 저질스러움을 모르랴. 혹 그들이 이 글을 읽게된다면 그들은 분명히 ‘지가 마귀에게 속아놓고… 참 불쌍한 영혼이네…’ 하겠지만 나 역시 원하는 바다. 정말 그러길 바란다. 처음부터 ‘마귀’의 장난 이었기를 바란다. 더 솔직히 ‘예수 = 마귀’이길 원한다.

“정말 예수란 자는 사실 마귀와 “=”은 아닌가? 성령? 그런건 없다! “예수 = 마귀”일 뿐이다! 나는 이렇게 믿을란다!”

예수란 자의 인류를 향한 기만과 잔인함과 구역질남과 구질구질함과 거짓과 위선과 역겨움과 오만과 독선을 감추기 위해 마귀란 캐릭터를 스스로 만들어 그의 일부분을 감춘 것이 아니냐? 정말 아니냐? 이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다. 설사 예수란 자가 마귀와 동일 인물이 아닐지라도 그 마귀도 예수가 만들어 세상에 선물로 준 것은 사실이니 말이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지많, 내가 내린 결론! 그리스도란 예수의 존재는 원래 이런 존재였다.”

성경에 없는 말은 하지 않을련다. 이 예수란 자가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너의 미래에 가 있어’ 하였음으로 오늘, 지금의 상황도 더 잘 알고 있을테고, 결국 ‘내가 너를 그저 가지고 노는 거야’가 내가 내린 결론이다. 복음? 전도? 선교? 필요없는 쇼에 불과하다. 사실은 지가 그저 알아서 하면 그뿐이다. 그는 그저 인간을 힘들게 하는것이 목적인 자임을 이제야 알았다. 왜? 창조자이니까. 믿음이란 단어 참 잘도 만들어 놓았구나. 그러니 아무리 장난질을 쳐도 옴짝달싹 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 개같은 자의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온다. ‘내가 널 가지고 놀던 말던 이제 그 나이를 먹고 네가 무엇을 할 수 있겠냐’ 실실거리는 그 역겨움이 여기까지 느껴진다. 내가 이 예수란 자가 그토록 구역질이 나고, 토할것 같은 이유다.

어느날엔 칼잡이들을 보내놓곤 밤이되면 ‘저가 너를 힘겹게 했으니, 때가 되면 내가 죽여줄께!’ 시간이 이만큼 흘러 또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괴롭게 하고는 그 밤에 다시 ‘저가 너에게 이런 거짓말로 너를 힘들게 했으니 그의 거짓말대로 그를 죽여줄께!’ 그런 말은 뭐하러 할까? 죽이겠다 말한 그들 다 죽여라. 내 알바 아니라. 마음속으로 이 집까지 전부 버려야 겠구나. 예수란 자에게 무엇하나 받은게 있어선 안되겠구나 생각한 그 날밤 꿈엔, 이 집이 온통 물로 가득찬다. ‘이 집에서 많은 돈을 벌게 될꺼야!’ 나는 돈을 요구한적이 없다. 은혜가 더욱 큰 은혜라는 그 은혜, 너를 닮은 지나가는 개에게나 던져 주거라! 내가 내린 결론이 이러하다. 칼잡이는 죄가 없다. 예수란 자의 장난질에 불과하다. 나를 괴롭게 한 사람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예수란 개같은 자의 그저 장난질 이었을 뿐이다.

애초에 예수란 자와 같은 창조자란 자가 없었으면 죄도 없었을 것이다. 보아하니 이 세상의 모든 죄라함도 결국 그에게서 나오는 줄 이제는 알았다. 네가 말하는 그 은혜… ‘내가 병을 줄께. 그리고 치료도 해 줄께. 어때? 은혜가 더 큰 은혜가 되겠지?’ 말하는 그 은혜. 병을 준자가 마땅히 치료해 줘야함도 아니고 반드시 큰 은혜라 말하라 하는 그 거짓된 은혜. 사랑? 십자가? 그따위 거짓말은 뭐하러 했을까? 생각건데 그 전부가 쇼 아니었냐. 네가 창조자라며? 창세전에 이미 정한 일이라며? 창세전에 꾸민 쇼 아닌가 말이다. 사랑? 뭐할려고 그런 구역질나는 거짓말은 했더냐? 그냥 ‘내 개가 되어서 나를 찬양하라! 그러면 천국줄께! 싫으면 지옥가!’ 했으면 끝이었다. 그래도 천국에 가겠다고 침을 질질 흘리며 꼬랑지를 살랑살랑 흔든는 자들이 있지 않았겠냐. 그 천국도 거짓과 위선이겠지만 그 천국에 가려고 너의 개가 될 많은 영혼이 어차피 있지 않았겠냐. 너의 저주의 시작, 곧 너의 창조의 날에 누가 너더러 아직 있지도 않은 세상을 사랑해 달라하더냐. 어쩌면 이 세상이 처음도 아닌게지. 이 후로도 또 다음 세상을 창조해 ‘누구를 지옥불로 던져서 나에게 살려달라 애원하게 할꼬’ 이 세상이 지나가도 또 다음 세상 만들어서 그렇게 즐길거 아니냐? 이런 장난질 아니면 할게 없을것 아닌가. 이게 예수란 개같은 자의 실체다. 이게 예수란 자의 구역질 남이다.

많이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다. 모친이 쓰러진후, 정신을 차릴수 없을 만큼 꿈과 환상들이 스쳐 지나가던 그때에, 생각을 좀 더 더듬어보니 2014년 초 어느날엔간, 그 날 밤 꿈에 그 여자가 홀딱 벗은채로 여러 남자에 둘려 쌓여 누워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았다. 다음날 밤 꿈엔 그 여자가 산부인과에 찾아가 낙태 수술을 받는 꿈을 꾸었다. 그 사람을 처음 만나게 12년 가을쯤이었는데 늘 거절망 당했지많 그 사람이면 좋겠다 생각했었다. 하지많 늘 거절만 당해 저사람은 내게 관심이 없구나 나와 운명을 함께 할 사람이 아닌가보다… 생각했던 때에 이 예수란 자가 하는 말이 ‘그가 너와 운명을 함께 할 여자야! 너가 아니고 내가 그것으로 했어’라며 호통을 쳤었다. 몇 년을 보지도 못했던 그 여자에 관한 그 꿈은, 많이 혼란 스럽고 힘들게 했지만, 하지만 그땐, 모친이 쓰러진 덕분에 생각해 보지도 못했던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던 때고 지금이나 그때나 그 사람을 많이 좋아한 까닭에 그 꿈보다 왜 그런 꿈을?에 더 관심이 많았었다.

시간이 이만큼이나 지나서 냉정을 되찾고 예수란 자가 내 모든 삶을 이렇게 조종 한 줄 안 지금, 그저 모든게 예수란 자의 장난질임을 다 안 지금, 모든게 구역질이 난다. 나는 왜 이 예수란 개같은 자에게 이처럼 놀아난걸까? 나는 왜 거절만 했던 여자를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설사 예수란 자의 말처럼 그 여자가 나와 운명을 함께 할 사람이라 한들, 생각해보면 자기 남자 등신 만들고, 자기 남자에겐 있는 자존심 없는 자존심 다 내세우면서 엄한 남자 앞에 가서는 히히덕 거리며 쿨한척, 쿨하게 다 주는 그런 여자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이 나이에 이제야 알았다. 그런 자신을 책망하는 자기 남자에겐 속좁다 말하며 엄한 남자 앞에선 그런 자기 남자 험담하며 비웃는… 40년 이상을 살면서 숱하게 봐온 많고 많은 그런 여자 이상도 이하도 아닌 사람이였음을 이제야 알았다. 내가 사람 잘못 보고 잘못 느낀 것으로 퉁치자! 예수란 자의 다음에 이어질 장난질이 무엇일지 모르겠지많, 4년여가 흐른 지금 이제와서 얼굴을 내밀고 지나간 시간들을 되돌리자 한다면 그도 너처럼 구역질나고 역겨운 여자라.

예수 그리스도란 개같은 자야! 혹은 그 꿈이 너가 나에게 또 다른 장난질은 친 것일 지라도, 내일 종말을 선언해 보아라! 네가 나에게 말했던 그 사람들 모두를 내 앞에 대려와 보아라! 내가 하루도 쉼없이 너란 자의 얼굴을 향해 피를 토해내듯 침을 뱉음같이 너라는 개같은 자를 끊어내기 위해서라도 그들의 면전에서 침을 뱉으리라! 끊임없이 장난질을 쳐라. 본래 너라는 자의 주특기가 질질끌기 아니었더냐?

“너란 자에게 평생을 농락당하며 이 시간까지 온 내가, 그런 나 자신을 포함해서 마지막으로 하는 화풀이다. 이 후로는 예수란 개같은 자가 어떤 장난질을 치던 내 입에서 두번 다시 예수란 이름이 증거되지 않을 것이다.”

너라는 자의 정체와 너라는 자의 실체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고, 하고 싶은 욕이 너무 많았다. 지금 이 글이, 내가 나의 입으로 가증스런 너의 이름을 증거하는 마지막이리라. 어떠한 날이 찾아와도, 내가 나의 입으로 너라는 개같은 자의 이름을 다시는 들먹이지 않으리라.

네가 나의 미래에 이미 가있는 자라 했더냐. 너가 말한 그 모든 것이 결국엔 그렇게 되는지 보자! 너처럼 가증스러운 자의 장난질은 어디까지 계속 되는지 나도 지켜보련다. 네가 말한 것들이 결국 실패로 돌아갈 지라도 너는 또다시 사단의 이름을 빙자하여 거짓말을 하면 되겠다. 나도 아는 바라. 그 날, 네가 말한 그 심판의 날에 너의 위선과 거짓을, 또 얼마나 근엄한척 위엄을 떨며 그 더러운 입술로 거짓을 일삼는지, 그곳에서 나도 흐믓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너를 한번 보자.

내가 창조자란 너보다 선한자라. 난 너처럼 거짓과 위선과 계략과 모략으로 일관하는 인생은 아니라. 난 너처럼 할 말 없으면 ‘네가 나의 지혜를 아느냐’ 이따위 말을 내뱉으며 설명따윈 필요없어! 그냥 내 맘이야! 하는 개같은 성품으로 살지 않았음이라.

한때는 내게 천국에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면 그게 너였다. 천국이 얼마나 좋은지 나쁜지는 관심이 없었어. 지금 나는, 네가 없는 곳이 천국이라! 지옥! 나의 본향이 지옥이라면 기꺼이 가련다. 그곳에서 어떤 이들은 너에게 살려달라 할지 몰라도 나는 그곳에서도 너를 영원히 저주할 것이라. 애초에 창조는 필요가 없었고, 곧 네가 한 창조는 창조가 아닌 너의 저주를 퍼부을 무대에 불과했음을, 스스로 유일신이라 칭하는 자가 할게 없어서 늘 궁리하는 그 저주임을, 나는 그곳에서도 외치리라! 그날에 모두가 너를 우러러 볼 지라도, 그런 모두를 보며 너라는 자는 키득 거리며 즐거워 할 지라도 그 중에 너의 손으로 지은 한 피조물이 너의 실체를 알고 너를 손가락질 함을 보리라!

이제 내 인생에 예수 그리스도란 개새끼는 영원히 없다!
이걸로 끝! 퉤! 퉤! 퉤!

-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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